작년인가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이중결혼에 대한 독특한 소재에 눈길이 갔다.
"아내가 바람났다"도 아닌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을 단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기대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남녀의 연애를 축구에 빗대어가며 풀어간 이 소설은 정작 있었어야 할 "이중결혼"에 대한 문제의식도, 하다못해 성찰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중 결혼을 선언한 아내와 그것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남편의 심리를 묘사하긴 했지만, 아내가 왜 이중결혼을 선언하게 되는지, 그녀라는 여자는 왜 이중결혼을 욕망할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결혼제도에 대한 깊이있는 시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제목을 단 그 소설은 작가가 독자에게 거는 '썬데이 서울'류의 장난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 소설이 이번에 영화화 되었고, 이번에도 난 역시 영화관을 찾았다. 원작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볼 수 있으리라는 욕망으로.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가지 재미있는 발견 외에는 소설이 그랬듯이 영화도 관객들에게 치기어린 장난을 거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낮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러 꾸준한 발길을 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조금은 설명이 될까.
01. 멜로영화 장르법칙의 일탈
유부녀의 사랑은 언제나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다, 애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 뒤로는 남편의 잔인한 복수극이 전개된다. <해피엔더>의 전도연과 최민식, 그리고 주진모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는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사회상을 반영하는 결과다.
영화속 남편들은 언제나 공격적에다 경쟁적이며, 여성위에 군림하면서도 무거운 짐을 진, 그래서 냉혹함과 비정함을 속성으로 지닌 고전적인 남성성으로 묘사된다. 반면 애인은 여성에게 한없이 친밀하고 달콤한 부드러움을 가진 남성으로 그려지는 것이 멜로 영화의 장르법칙이었다. <애인>의 성현아,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바람피기 좋은 날>의 김혜수 등의 남편과 애인관계를 떠올려 보라. 이들의 애인들은 부드러운 이미지만으론 부족하여 나이 어린 애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의 사정은 위 영화들과는 정반대이다. 손예진의 남편 역으로 나온 김주혁은 기존 남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아내와 수직적인 권력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이해심으로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소원까지 들어주는 천사와 같은 남성성을 보여준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상욱
물론 이 영화의 애인 역으로 나온 주상욱도 애인으로서의 부드러움을 보여주지만 김주혁의 이해심 깊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지점들에서 관객들은 전의 영화들에세 볼 수 없었던 대리만족등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멜로영화 장르법칙인 그 어떤 복수극이나 불순한 여자의 몸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손예진이가 이민가기는 하지만, 그것을 바람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복수로 볼 수 없고, 오히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수로까지 비춰진다.
02. 한국 팜므파탈의 진화
그 동안 동서양 영화들에서 팜므파탈들은 주로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이나 창녀, 거리의 여자, 하녀 등으로 그려졌고, 그 정점은 <원초적 본능>에서 황금빛 음모로 남근을 움켜쥔 샤론스톤으로 대표된다. 한국 영화에서 본격적인 팜므파탈의 등장을 알린 작품은 <자유부인>(1956)이다. 명망있는 교수 부인의 외도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전후 성역할의 변화와 가부장적 권위의 쇠태 및 서구적 생활패턴의 유입되는 시대상에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경제적 독립을 여성의 성적타락이라는 문제로 귀결시키며 주인공을 처벌한다.
다음은 <지옥화>(1960)의 소냐. 당대 최고의 스타 최은희를 기용한 이 영화에서 최은희는 정갈한 한복 이미지를 훌훌 벗어던지고, 바디라인을 과감히 노출하는 검은 드레스, 담배와 선글라스, 할리우드 팜므파탈을 강력하게 재현하는 서구적 메이크업으로 경제적, 성적 욕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양공주로 변신시키고 역시 불순한 섹슈얼리티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소냐 역시 죽음의 처벌을 받는다.
같은 해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는 한국영화 팜므파탈의 정점으로 손색이 없는데, 이때부터 한국영화들의 팜므파탈들은 식모, 하녀, 여공, 호스티스 등으로 무장된다. 이러한 영화들은 프로이트의 "억압된 것들의 귀환"을 떠올리는 내러티브를 구조를 갖는다. 지배계급을 위해 묵묵히 침묵하는 타자들인 하녀들이나 여공들이 복수를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집단적 무의식의 아류작들이 오랜기간동안 재생산된다.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1992),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2003) 등은 성적으로 적극적이면서 퇴행적이지 않은 건강한 기혼 직장여성의 모습(결혼 이야기), 더 나아가 결혼제도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섹스를 즐기거나 남성의 페니스에 의존하지 않는 동성애자의 모습을 (처녀들이 저녁식사), 당당히 싱글맘을 선택하는 여성(싱글즈), 외도를 하고도 어떠한 죄의식이나 처벌에 시달리지 않는 여성(바람난 가족)으로 진화시킨다.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단편 영화 <생강>으로 여성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더>(1999)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이 작품은 IMF 사태를 맞아 가족 해체 위기, 실직한 가부장의 권위실추 등의 긴박한 사회문제를 아내 최보라의 불률으로 인한 부부의 사적 갈등으로 치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피엔더>는 가부장 헤게모니의 위기와 유부녀와 애인의 사랑, 이어지는 남편의 잔혹한 복수극으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따른다. 이 영화는 남편에게는 완전범죄와 면죄부를 아내에게는 불순한 몸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한국영화가 과거로 회구해버리는 퇴행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이후, 한국영화들은 여성자신의 성적 욕망에 솔직하고, 섹슈얼리티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커리어 우먼들을 속속 등장시키며 성적 담론을 맘껏 펼친다. 이제 재래적인 작업 필요 없이 언제든 만났다가, 언제든지 헤어지는 쿨한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리버럴리스트의 판타지를 아낌없이 채우주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거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강간과 불륜에 의하여 남자들에 의하여 그 더렵혀진 몸을 단죄받는다는 내러티브는 해소된다. 영화에서 손예진은 매력적인 외모, 재기발랄한 애교와 대화, 헌책을 탐하는 지적인 면모와 남자 못지 않은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강력한 현대 여성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또 다른 사랑하는 젊은 애인과 결혼해도 처벌받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그녀에게는 간음도, 불륜도 성립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의 치명적인 외적인 매력만이 이 모든 것을 커버한다는 논리가 한없이 미약하기는 하지만, 이 얼마나 냉엄한 팜므파탈인가. 그녀와 결혼한 남자는 타자로서의 오랫동안 억압된 삶을 살아왔던 여성의 화려한 귀환으로 마침내 그 복수극을 되돌려 받게 된 것이다.
03. 어긋난 내러티브의 전개
한국적인 남성상의 대표들은 누구인가. 그동안 박노식, 이대근, 남궁원, 신성일을 거쳐 최민식, 유오성, 최민수로 이어지는 마초적인 바통들은 이제 이어 받을 후계자가 최소한 영화에서는 없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들의 특징은 여성들 위에 끊임없이 군림하며 지배하고, 여성의 부정에 대하여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마초적인 권위로 특징지워 진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새로운 중성적인 남성성들을 등장시킨다. <편지>(1997)의 박신양, <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한석규, <봄날은 간다>(2001)의 유지태 등은 터프한 남성적인 매력보다 감성으로 치장한 여성적인 이미지를 주요 무기로 삼는다. 공교롭게도 이들 중성적인 남성들은 남편보다 아내의 애인들에게서 정점을 이룬다.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의 애인 역을 맡았던 주진모와 같은 남성들은 중성을 넘어서 달콤하기까지 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남편과 애인은 둘다 전통적인 남성성을 내리고 미래적인 남성성을 선보인다. 이제 영화에서 예의 마초적인 남성들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국 손예진이 두 남성을 굴복시키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내러티브는 김주혁이가 전개한다. 마지막 남은 남성의 자존심일까.
이미 이 영화는 강력한 여성이 내러티브를 추동시키고 있음에도 남성의 관음증자적인 시선을 버리지 못한다. 손예진의 매력적인 외모와 전라의 섹스신들은 남성관객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섹스신에서 전라의 여배우가 손예진이 맞는지에 대한 객석의 웅성거림들은 아이러니다. 최주혁이가 왜 마초적인 남편이 되지 않고 무력한 남편으로 변해갔는지에 대한 모든 설명은 오르지 손예진의 아름다움으로 귀결시킨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 변화의 주체는 분명 최주혁이 아닌 손예진이다. 이 어긋한 내러티브의 전개의 성글음을 맛보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오늘날 결혼제도의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취하면서도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극장을 나서면서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손예진의 외모로만 설명되고 집중된다. 이것이 <아내가 결혼했다>가 넘지 못한 임계점이다. 결혼과 이중결혼은 온데간데 없어, 결국 이 영화가 감독이 관객에게 거는 치기어린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정보
제목 아내가 결혼했다.
드라마 | 한국 | 119 분 | 2008-10-23 |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정윤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 사마리아(2004)
배우 손예진(Son Ye Jin) 주인아 역, 김주혁(Ju-hyuk Kim) 노덕훈 역, 주상욱 한재경 역
평점 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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