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 사회면에서는 가끔 가슴 아픈 사연들을 볼 수 있었다. 사연인즉 어떤 처녀가 치한으로부터 자기의 순결성을 지켜려다 혹은 잃고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들 말이다. 그 꽃다운 나이의 청춘이 피기도 전에 쓰려져 간 꽃잎 마냥, 그 아픔은 오래도록 남았다. 처녀들에게 순결성이 중요하듯이 사나이들에게는 의리와 명예가 더 없이 중요하다. 특히, 동양사회에서 그것은 무너뜨릴수 없는 도덕률로서 작용한다. 물론 순결성만큼이나 명예도 퇴색하기 했지만.
펑 샤오깡 감독의 <집결호>는 의리와 명예를 위하여 한 평생을 보낸 한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집결호"는 전장에서 퇴각명령을 뜻하는 나팔소리다. 중국 인민해방군 9중대 중대장 구지디는 국민당과 치열했던 '문화전투'에서 퇴각을 명하는 집결호가 들릴 때까지 적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연대장의 명령을 받는다.
이후 영화는 실감나는 전투씬으로 채워진다. 대형 스펙타클 영화의 경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결호>는 대형 액션씬을 전하면서도 미세한 이미지와 소리들을 놓치지 않는다. 언제 총알이 날아 올지 모르는 극도로 긴장된 숏에서의 들릴 듯 말 듯 한 발자국 소리, 담배를 빨아 들일 때 나는 연초타는 소리(사실 요즘 담배들은 아무리 빨아도 연초타는 소리가 나지 않는데, 그 소리는 과거를 회상하는 감성을 자극한다), 신호를 보내려 치켜 든 손이 적막 속에서 정적을 깨트리며 총알이 관통하는 이미지들은 <집결호>가 영화적 현실1에서는 관객들이 없었고,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에는 배우가 없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관에 배우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상황을 "영화적 현실"이라고 부른다. 영화적 현실은 관객이 영화속으로 들어가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는데,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치밀한 미장센에 의하여 획득될 수 있다. 잘 만든 영화일수록 관객에게 영화적 현실은 쉽게 다가온다. 영화적 현실이 축적될 수록 관객들은 그 영화를 진실되게 받아들인다. '>을 획득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전투씬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태극기 휘날리며>가 떠오른다. <집결호>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특수효과팀이 전쟁씬을 맡았고, 미국에서 CG와 사운드 파트를 담당한 작품인 것 만큼, 블록버스터로서의 화약냄새가 물씬 풍긴다. 구지디가 48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반공호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는 장면들은 확실히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진일보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특수효과팀의 기술적인 진보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일 것이다.
펑 샤오강 감독은 주인공 구지디에게 사나이들에게는 처녀성이나 다름없는 의리와 명예로운 삶의 저편을 선택을 할 것인지 살아서 비굴하게 살 것인지를 잔혹하게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포탄을 쏘던 구지디는 폭발음의 충격으로 귀가 멀어 집결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대원들은 제각각 집결호가 울렸다고도 하고 듣지 못하였다고도 한다. 이 얼마나 삶이 엇갈리는 당혹하고 처절한 순간인가. 그것도 그들에게 사수를 명한 연대병력은 이미 후퇴했음이 명백한 상황에서.
구지디는 부대원들에게 최종심급을 내린다. 자신은 집결호를 듣지 못했으니 남고, 집결호를 들은 사람들은 퇴각해도 좋다고 말한다. 이 순간 관객들도 갈등하기 시작한다. 구지디 역을 맡은 장한위의 명연기로 영화적 진실은 배가된다.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집결호를 불었다해도 그들이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국 마초적인 의리로 똘똘 뭉친 부대원 48명은 구지디와 생사를 같이 하기로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반공호 안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행정관이 자폭을 앞두고 모든 부대원들이 몰살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삶 최후의 서사를 써 내려가던 만년필의 사각거림은 관객들에게 또렷한 방점으로 남는다. 물론 주인공은 살아 남았다. 9중대원 전원이 전사한 가운데 구즈디는 홀로 살아 남았다. 중상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로 발견된 구즈디는 당시 적군의 군복을 입고 있어 아군에게 적으로 오인받아 체포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문이 생긴다. 집결호가 들릴 때까지 고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은 과연 48명이라는 전부대원의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다. 더욱이 그들이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후방의 연대병력이 안전하게 퇴각하는 데 있는 있었다면, 적이 후퇴하고 난 이후에도 그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다음으로 혁명열사로서가 아닌, 실종 처리된 전 부대원의 명예를 위하여 구지디는 일생은 부대원들이 고이 잠든 반공호를 찾는데 쓰여진다. 여기서 과연 죽은 자들을 위한 산 자의 희생이 정당한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구지디의 전우애는 눈물겹다. 홀로 동료들을 찾아 광산을 파헤치며 청춘을 다 보낸다. 10년이란 세월동안 광산을 전전하며 땅을 파는 구지디의 모습은 흡사 시지프스를 보는 듯 하다. 설령 부대원들을 찾아 명예를 찾아 준다 하더라도 함몰된 부대원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구지디의 인생에 무슨 깊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처녀성을 잃어 버린 처녀가 목숨을 버린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구지디에게 있어서 의리와 명예는 어쩌면 처녀성보다 더 놓은 기상을 나부낀다. 그에게 의리가 없었다면 그는 존재할 수 없었고, 그에게 명예가 없었다면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처녀막을 잃어버린 처녀가 시집을 갈 수 없었듯이, 의리와 명예를 잃어버린 구지디는 퇴각도 할 수 없었고, 삶을 회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구지디가 1951년 조선중부 횡성군 전투에 참가하는 장면이 <집결호>에는 나온다. 이 시퀀스가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사로서 덧없이 세상을 방랑하던 구지디의 삶을 희화화한다. 1987년 구지디는 문화 명예 군인 요양원에서 향년 71세로 병사한다. 그의 인생은 관객들에게 의리가 무엇인지, 명예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만든다.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해서 걸어가는 것이며, 무의미하다고 해서 그냥 주저 앉을 수 만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결호>는 1948년 중국내전을 배경으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양금원 소설 ‘관사(官司: Guan Si)’를 중국의 화이브라더스(Huayi Brothers Media & Co. Ltd.,)와 한국의 MK 픽처스가 공동제작한 영화화한 전쟁 드라마이다. 구지디의 출생후 3개월뒤 그의 부모는 아사하고 밭에서 그를 주운 한 제화공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이 바로 구지디라고 한다. 2007년 12월 20일, 중국 개봉에서 개봉 10일 만에 약 150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6주 연속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국 흥행 기록을 경신하였다.(기존 1위는 <명장>의 2억 6,000만 위안, 2위는 <영웅>의 2억 5,000만 위안)
영화정보
제목 집결호 Assembly, 2007
전쟁, 액션 | 중국, 홍콩, 한국 | 124 분 | 개봉 2008.03.06. | 국내 12세 관람가
감독 펑 샤오강
배우 장한위(9중대장, 구지디), 뎡 차오 등조 중대장(후에 연대장〕 자오 역 위안 원캉 원문강 대리행정관, 왕진춘 역, 탕 옌 탕연 손계금 역, 리아오 판 Fan Liao 1분대장, 자오다펑 역, 왕보강 저격수, 장모차이 역
평점 7.7/10
- "영화적 현실"이라는 용어를 스스로 만들어 보았다. 촬영장에서는 관객들이 없었고,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에는 배우가 없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관에 배우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상황을 "영화적 현실"이라고 부른다. 영화적 현실은 관객이 영화속으로 들어가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는데,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치밀한 미장센에 의하여 획득될 수 있다. 잘 만든 영화일수록 관객에게 영화적 현실은 쉽게 다가온다. 영화적 현실이 축적될 수록 관객들은 그 영화를 진실되게 받아들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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