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벗어나는 색다른 일을 겪게 될 때,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작동할까.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경험하는 순간, 의식 또한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기능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흔히 이것을 "무의식[각주:1]"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의식과 무의식을 굳이 구분해야할 실익이 없는 듯 하다. 의식 또한 무의식만큼이나 불분명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육체의 저편에서 육체를 지켜보는 무엇인가를 의식 또는 무의식 쯤으로 부르기로 하자)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비일상적인 일들을 겪는다. 만약 그것이 일상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수준의 경험이라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버린다. 그것은 꼭 육체적인 외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렉산더 아자 감독의 영화 <미러>는 전직 형사 벤 카슨 (키퍼 서덜랜드 분)이 동료 경찰을 실수로 살해하고 겪게되는 트라우마[각주:2]의 증상들을 잘 보여준다.


벤 카슨은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술을 선택하고, 알콜 중독에 빠진다. 결국 가족들과 별거하게 된 그는  이번에는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약물에 의존한다. 어느 정도 술을 끊게 되자, 여동생 집에 얹혀 살던 벤 카슨은 가족과 삶을 되찾기 위하여 파트 타임 일자리를 구한다.

화재로 폐허가 된 메이플라워 백화점 야간 경비일이다. 폐허가 된 빌딩의 야간 경비는 담력이 요구되는 일자리인데, 알콜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가 새출발하는 첫 직장으로 메이플라워 백화점을 선택한 것은 납득이 쉽게 가지 않는다.

<미러>는 폐허가 된 백화점을 공포감을 느끼기에 족할 정도로 여러 소품들을 배치한다. 쓰러진채로 방치된 마네킹들, 반쯤 타다 남은 조각상, 텅빈 넓은 매장이 자아내는 공허감,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거울을 건물 여러 곳에 배치하여 키퍼 더럴런드의 공포감을 자극한다.

그것은 곧 관객을 공포감에 몰아 넣는 것과 같다. 카메라는 키퍼 서덜랜드의 얼굴을 비추고, 거울을 비추는 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기괴한 공포감을 이어간다. 거울이 벤 카슨을 보고 있는 듯한 몰입을 이루어 낸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순간이 거울을 볼 때라고 한다. 거울에 비춰진 자기 자신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면서도 완전한 자기 자신은 아니다. 자아가 이미지화된 모습을 처음으로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이다. 자기 내면과의 첫대면이자 또 다른 자아와의 첫만남인 것이다.

영화 <미러>에서 정신과 의사는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 자신을 보고 타자로서 인식하게 되면 자아와 또다른 자아와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키퍼 서덜런드에게 설명해 준다. <미러>에서 키퍼 서덜런드가 보이는 증상들은 정신과적으로 보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분열증은 누군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망상과 실제로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데도 보고 들리는 환청과 환시 등의 증상을 보인다.

벤 카슨은 백화점의 거울을 통하여 환청과 환시를 본다. 거울 속에서 화재 때 불에 타 죽은 듯한 사람들의 기괴한 울부짖음과 소름끼치는 환영들이 출몰한다. 그 환영들은 백화점 거울에서만이 아니라 여동생 집의 거울에서도 출몰하여 여동생을 살해하게 되고 아내의 집에까지 거울의 마력이 미치게 된다. 키퍼 서덜런드가 타고가는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에서도 기괴한 환영이 출현한다. 이 장면은 매우 동양적인데, 즉 귀신은 거울에 비추어진다는 오랜 속설을 알렉산더 아자 감독이 알고서 차용했는지 사뭇 궁금하다.

영화 <미러>는 김성호 감독이 연출하고 유지태가 주연했던 영화 <거울 속으로>(2003)를 리메이크했다. 판권을 산 알렉산더 아자 감독은 <거울 속으로>가 캐릭터, 스토리, 공포에 연결점이 없다며 새로이 각색을 했으나, 초자연적인 원혼의 복수극으로 기본 플롯을 잡고 만 <미러> 또한 원혼이 스린 거울이 실체를 손상시킨다는 태생적인 한계는 뛰어넘지 못했다. 차라리 영화 전반부와 같이 키퍼 서덜런드의 정신분열 증상에 초첨을 만들어 영화를 풀어갔다면 굳이 아시아적인 귀신 개념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훨씬 좋은 공포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일테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의 플롯을 따라가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싸이코>의 영화적 훌륭함은 이 영화를 통해서도 반증된다.


거울속에 갇혔던 악령들이 ‘에세커’라는 인물을 이용해 현실세계로 뛰쳐 나온려 한다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관객들에게 지나친 비약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단, 에세커라는 인물과 제 손으로 자기 입을 찢어발겨 자살하는 여동생의 죽음, 아내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 들이 악령의 짓이 아닌, 벤 카슨의 정신불열증상으로 엮어갈 수 있는 접점이 있었다면, 조그만 암시라도 있었으면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TV 시리즈 <24>의 키퍼 서덜랜드가 주인공 벤 역을 맡았고, <데자뷰>, <런던>의 폴라 패튼이 벤의 아내 에이미 역을, <이글 아이>의 아역배우 카메론 보이스, TV <더 게임>의 아역배우 에리카 글럭, <아드레날린 24>의 에이미 스마트, <스타 더스트>의 제이슨 플레밍, <프레스티지>의 에즈라 버징턴 등이 출연했다.

영화정보
제목 미러, 2008(평점 6.5)
장르 공포, 스릴러 | 미국 | 111분 | 2008. 9. 18. |
감독 알렉산더 아자, 원작 김성호
배우 키퍼 서덜랜드(벤 카슨), 폴라 패튼(에이미 카슨), 카메론 보이스, 에리카 글럭, 에이미 스마트, 제이슨 플레임, 에즈라 버징턴
RE 2008/09/21 03:25
  1. 무의식 [無意識, unconsciousness] 은 일반적으로 각성(覺醒)되지 않은 심적 상태,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자각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프로이트에 의하면, 무의식의 심적 내용은 억압된 관념 및 특히 성적본능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본문으로]
  2.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外傷後─障碍,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전쟁,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 자동차·등에 의한 사고에 의해 발생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타락, 분노, 피해의식, 수치심을 느끼는 정신질환으로 악몽을 꾸기도 하고, 위통·두통·학교공포, 외부인 공포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알코올이나 약물남용, 자해적 행동과 자살 시도, 직업적 무능력, 대인관계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팔러스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달력

 «  » 2010.08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