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안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하얀 비단 양복을 세련되게 입은 중국인 청년이 소녀를 지켜 본다.
바로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의 첫 장면이다. 1920년대 말 프랑스 점령 치하의 베트남 사이공, 세상을 지루해하는 듯한 분위기와 반항기 어린 눈동자를 가진 열 여섯살 어린 소녀는 제인 마치가 연기한다.
제인 마치는 <연인> 이후 고향인 영국에서 파리로 이사한 마치는 소프트 포르노적인 시나리오를 여러 편 거절하다, 브루스 윌리스와 공연하는 리처드 러시 감독의 섹슈얼 사이코 서스펜스물 <컬러 오브 나이트>를 두 번째 영화로 택했다.
브루스 윌리스와의 섹스장면이 <연인>과 비슷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 영화로 제인 마치는 열다섯살 연상의 프로듀서 카르민 조소라와 청바지 차림으로 극비 결혼식 올렸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카르민 조소라는 자신이 제작한 영화들에 마치를 출연시켰지만 이미 한풀 꺾인 스타덤은 다시는 오르막길을 만나지 못했다. 2001년 이혼한 마치는 3년 뒤 주얼리브랜드 초파드 모델이 되었다)
장 자크 아노는 잡지 <저스트 세븐틴> 표지만 보고 곧바로 제인 마치를 <연인>의 오디션에 초대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인 소설을 각색한 <연인>의 소녀 역에 캐스팅했다. 이때 그녀는 17세의 나이였다!
제인 마치가 중국인 청년(양가휘)과 벌이는 정사신은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사신이 아닌가 한다. 사이공 시의 침침하고 골목의 벅적거리는 소음이 그대로 들리는 청년의 침실에서 나누는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묘하고 관능적이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은 육체에 대한 집요하고 끈질긴 애착과 탐미적인 화면구도, 베트남의 그 야릇한 식민지 풍경들로 명품 정사신을 만들어 냈다. 소녀와 청년의 애정 심리 묘사 뿐 아니라 소품 하나 하나에 까지 구현된 절제된 장면들은 정사신에 보이는 땀방울 만큼이나 고혹적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정사신을 17세 소녀가 찍었다는 사실은 잘 믿기지지가 않는다.
흔히, <색,계>의 정사신이 충격적이고 아름답다고들 하나, <연인>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양조위는 <색,계>에서 남성을 오랫 동안 노출 시켰고, 정사신도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다. 물론 <연인>에서도 양가휘의 남성이 노출되기는 하지만, 양조위처럼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다. 제인 마치의 헤어 누드 조차도 탕웨이의 그것이 아닌 꽃같은 16세 소녀의 순수한 관능을 보여준다.
영화 <연인>은 작가가 된 할머니가 파리에서 베트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소설을 써내려 가는 형식이다.
제인 마치의 가족은 파산한 하류층의 빈민한 생활을 베트남에서 보낸다. 어머니(프레드릭 메이닌거)는 광기와 절망 속에 살고 있고, 오빠(아놀드 기오바니네티)는 아편에 찌들어 있으며, 동생(Brother: 멜빈 파우포드 분)은 나약함에 빠져 있다.
방학을 가족과 보낸 소녀는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사이공으로 향한다. 그녀가 탄 버스는 '사덱' 지역을 통과해 메콩강을 건너기 위해 페리호를 탄다. 이 때 청년(양가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리무진에서 내린 청년이 소녀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타이타닉>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타이타닉>과는 상황이 반대일 뿐이다. 가난한 영국인 소녀에 중국인 갑부의 아들 청년이 만나는 것이다. 청년은 기꺼이 사이공까지 리무진으로 그녀를 모신다.
리무진 안에서 청년과 소녀가 나누는 대화, 침묵 속에서 청년이 소녀의 손을 잡는 장면은 애처로운 로맨틱함을 보여 준다. 이후 소녀는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청년의 리무진으로 등하교를 한다.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2세의 이 중국인 청년은 곧 아버지로 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을 것이다.
청년은 어느 날 '독신자의 방'이라 불리는 그의 침실로 그녀를 데리고 섹스를 한다. 이후 이들의 밀월은 약 1년 반 동안 지속된다.
소녀의 집에서는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청년의 입에서는 프랑스 창녀라는 이유로 이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청년은 중국의 관습대로 얼굴도 모르는 부호의 딸과 이미 약혼을 했다.
청년은 호화로운 파티 장에 소녀의 가족들을 초대한다. 소녀와 소녀의 남동생이 껴 안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청년은 격분한다. 그 날 청년과 소녀는 마지막 섹스를 한다. 아무 말도 없이 시작하여 아무 말도 없이 끝난 섹스는 긴 이별을 예고한다.
결국 중국인 처녀를 신부로 맞아들이는 청년, 멀리서 지켜보는 소녀. 신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중국 풍습의 결혼식이 이채롭다.
소녀가 사이공을 떠나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랐을 때 부두 한귀퉁이에 리무진이 보인다. 대해로 나아가는 소녀의 배와 멀어져가는 청년의 리무진, 이별의 뱃고동 소리와 붉게 노을지는 하늘의 풍경은 그리 흔하게 볼 수 없는 슬픈 그림이다.
이제 사이공시는 보이지 않고 밤이 되어 버린 대해의 한 가운데에서야 소녀는 눈물을 터뜨린다. 그 울먹이는 소녀의 모습은 아마도 바다 여행을 한다면, 한 번쯤 Ej
영화정보
장르 멜로, 애정, 로맨스
국가 프랑스, 영국, 베트남
상영시간 110 분
개봉 1992. 6. 20.
감독 장 자끄 아노
원작 마가릿 뒤라스 Marguerite Duras의 콩쿠르 수장작
음악 가브리엘 야리드 Gabriel Yared
배우 제인 마치(소녀), 양가휘(중국인 청년), 프레더릭 메이닌거(소녀의 어머니), 아몽드 지오바니네티(오빠), 멜비 푸포(동생),
평점 9.4/10
RE 2008/07/2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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