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2>는 시나리오만 빼고 나면 볼거리가 아주 아주 많은 영화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LA 침몰장면으로부터 옐로스톤 폭발장면, 항공모함 JFK가 백악관을 덮치는 장면, 지진과 쓰나미 장면들은 재난영화 CG가 구현할 수 있는 스펙타클의 정수라할 만하다.
소재도 괜찮았다. 마야문명과 주역,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하였다는 2012년 지구 종말설은 대중적인 흡인력이 있을 법 하다.
고대 마야인들은 2012년 북반구의 동짓날(12월 21일)에 지구, 태양, 은하계의 중심이 일직선으로 정렬되어 지구가 종말을 맞는다고 예언했다. 몇 천년 뒤의 개기월식과 일식 날짜까지 정확하게 예측한 마야인들의 달력은 정확하게 2012년 12월 21일로 끝난다.
그리고 쓰나미와 쓰촨성 지진 등을 경험한 인류에게 태양 흑점의 폭발로 인하여 발산된 뉴트리노가 지구 중심의 액체를 변이시켜 지구 내부 온도의 급격한 상승으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여 지구가 멸망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물리학자나 천문학자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인간은 경험한 것을 거의 진리로 받아들이니까.
그러나, 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을 감지한 선진국들이 3년 동안 극비리에 선별된 지구인을 피난시킬 거대한 노아의 방주를 중국 쓰밍 계곡에서 건조한다든가, 지구 종말을 처음 감지한 과학자 햄슬리(치웨델 에지오프)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피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는 장면 등은 150여분 동안 쌓아온 지구멸망의 비장함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시나리오 상의 몇몇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2012>는 후반부 약 10분을 빼고는 지구멸망의 장엄함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재난영화 전문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연출력이 살아있는 영화다. 다만 극도로 확대재생산된 재난의 비주얼 말고는 감동적인 서사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크나큰 약점이다. 롤렌드 에머리히 감독은 종말론에 너무 손쉽게 무임승차한 셈이다.
만약 이 영화에서처럼 지구멸망을 맞이하여 지구인 50억 중에서 5십만명만 구출할 수 있다면(0.01퍼센트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들을 선별할 수 있을까라는 흥미로운 상상도 해 볼 수 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철저하게 경제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10억 유로를 낸 사람들을 구원한 셈이다. 아마도 이 방법 말고는 인류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은 딱히 없을 것이다.
마음이 순진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나서 허무하고 살 맛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겠냐. 지구종말이 온다면 맞이할 수 밖에, 지구가 멸망된다고 해서 그렇게 허무하게 느낄 일만은 꼭 아니지 않느냐. 살아서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 건조함과 욕됨으로 얼룩져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장르 모험, SF, 스릴러 | 미국, 캐나다 | 157분 | 개봉 2009.11.12 | 12세 관람가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배우 존 쿠삭(잭슨 커티스), 아만다 피트(케이트 커티스), 치웨텔 에지오포(애드리언 헬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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