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만큼 노출에 집단적인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사회도 드물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노출로부터 국민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문화정책의 결과일 것이다. 조직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더 강렬하게 욕망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던가.
예상대로 객석은 여성관객들로 빼곡했다. <박쥐>를 보러 남자가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무안할 정도였다. "남자가 여기 왜 왔어"라는 지탄이 들리는 듯 했다. 하긴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라도 팔러스는 박찬욱표의 영화들에게서 거리감을 느꼈었는데, 단순히 남자가 남자의 성기 노출을 보러 왔다는 것도 겸연쩍은 일이긴 하다.
<박쥐>의 스토리 라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신부 상현(송강호)은 수도원에서 환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다 못해 바이러스 '이브'를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스스로 동참하여 이브에 감염돼 죽었다가 우연히 뱀파이어 유전자가 들어 있는 피를 수혈받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지원자 500명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그는 성자로 추앙받으며, 어릴 적 친구인 강우(신하균)를 치유하게 되면서 강우의 아내 태주(김옥빈)에게 연정을 느낀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뱀파이어 신부와 유부녀 태주의 치정극으로 곧바로 돌진한다.
"남편과 시어머니(김해숙)로부터 끊임없이 학대 받았다."라고 태주가 말했을 때, 상현은 성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친구 강우를 살해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태주도 구출할 것을 결심한다! 마침내 상현이 태주를 뱀파이어로 만들었을 때, 태주는 오히려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여자에 대한 상현의 성적인 욕망을 본래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뱀파이어의 수혈로 인하여 상현에게 성적욕망이 생겨나고, 그 성적욕망은 상현을 집어 삼키고, 또 하나의 뱀파이어 태주에게 전이되어 표출된다는 점이다.
성적인 본능을 인간의 본래적인 욕망으로 보지 않고, 어떤 외적인 영향에 의하여 타락한 욕망이 생겨난다는 설정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생뚱함은 송곳니 대신 쪽가위로 피를 빨아먹고, 주사기를 이용하여 흡혈하는 장면들에게 까지 확장된다.
이 영화에서 태주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을려는 본능이 강했던 반면, 상현은 자살 혹은 순교를 택한다. 상현은 뱀파이어에 항복하고 죽음에 굴복하고 만 셈이다. 감독으로서 상현에게 줄 수 있었던 문제해결이 그것 뿐이었을까. 근대 이후 인간이 쌓아온 실존적 인간정신을 너무나도 쉽게 방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신 감독은 이 영화에서 대한민국 최고 영화감독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력을 마음껏 남용하는 자유를 누렸다. 이 영화의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리더필름, 폭죽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림 대신 괴상한 피리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송강호의 성기 노출은 불필요 했던 장면에서 나왔다. 태주(김옥빈) 섹스신에서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주민 소녀(황우슬혜)를 강간하고 난 후 뒤 돌아서는 장면에서 나왔다. 만약 사실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섹스 중에 돌아 섰으므로 발기된 성기를 보여주든지, 아니면 김옥빈과의 섹스신에서 노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장면은 에로틱한 순간이 아니라, 상현이 삶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소녀를 강간하는 장면인데, 성기를 노출하여 굳이 성기에 대한 혐오감을 배가시킬 필요는 없었다. 노출로부터 국민을 강력하게 보호하겠다는 문화정책이 이 부분에서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태주 역을 맡은 김옥빈의 연기는 전에 없이 보기가 참 좋았다. 거칠고도 긴 섹스신도 잘 소화하였다. "저,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라며 그녀가 가슴을 노출했을 때 농염한 팜프 파탈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녀의 작고 앙증맞은 젖꼭지 만큼이나 그녀의 연기는 물이 올라 있었다.
영화 초반부에서 그녀는 팔딱거리는 생선과도 같이 날것 같은 생경함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더니, 후반부에서는 욕망 그 자체가 되어 팜므 파탈이 되었다. 그녀가 신부를 굴복시키는 순간 영화는 거의 끝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박쥐>는 대중성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박찬욱 마니아들을 위한 컬트영화이다. 성기노출이라는 노이즈 마케팅이 컬트 영화에도 성공할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제목 박쥐 Thirst, 2009(평점 4.5)
장르 드라마 | 한국 | 133 분 | 개봉 2009.04.30
감독 박찬욱
배우 송강호(신부, 상현), 김옥빈(태주), 김해숙( 태주의 시어머니), 신하균(태주의 남편 강우), 박인환(노신부), 송영창(승대), 오달수(영두), 황우슬혜(소녀)
장르 드라마 | 한국 | 133 분 | 개봉 2009.04.30
감독 박찬욱
배우 송강호(신부, 상현), 김옥빈(태주), 김해숙( 태주의 시어머니), 신하균(태주의 남편 강우), 박인환(노신부), 송영창(승대), 오달수(영두), 황우슬혜(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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