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무비스타/섹시스타 여우들 2009/04/06 23:12
ⓒ 무비레터 프롬 팔러스 영화 ··· 검열과 관음의 끝없는 욕망
글로리아 스완슨 * 무성영화 스크린을 압도했던 강렬한 존재감
과도한 작위적인 발성과 탐욕적인 제스쳐들은 그녀의 연기가 너무 연극적이라고 생각됐지만, 노마를 회상해 볼 수록 그녀의 아우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완벽하게 노마 데스몬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글로리아 스완슨은 1910년대 후반의 <남편을 바꾸지 마라>(1919)와 <남자와 여자>(1919)에 출연하며, 이 영화를 감독한 세실 B 드밀과 함께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무성 영화시대를 이끌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무성영화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그녀의 아름다움들은 그녀를 타고난 무성영화 배우로 만들었다. 50대였지만 <선셋 대로>에서 보여준 그녀의 깨끗한 피부는 햇빛을 피해 다니는 극성과 극단적인 채식주의 덕분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태어나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1897년 3월 26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출생한 스완슨은 신선하고 놀라운 배우로서의 끼를 지니고 있었다. <에어포터 75>(1974)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하며 은막을 떠난 그녀는 마치 영화처럼 여섯번 결혼했고, 루돌프 발렌티노와 세실 B 드밀. 그리고 케네디가의 조지프 P. 케네디 시니어 등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영화 "선셋 대로"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명연기로 글로리아 스완슨은 무성여화 스타 노마 데스몬드와 동의어가 되었다.
1930년대에 화려하게 은퇴한 그녀는 50대에 컴백하여 다시 한번 열연을 펼친 <선셋 대로>(1950)로 제8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그녀의 연기 열정은 그녀의 삶 만큼이나 치열했다.
스완슨은 할리우드 스타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꽤뚫고 있었던 그녀는 언제나 한발 앞선 연기자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할리우드의 화려함의 상징으로 스크린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던 스완슨은 1983년 뉴욕에서 전설적인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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